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DAILY ː

힘을 빼는 방법

 

 서른이 넘고 나서 이렇게 힘을 빼고 일상을 지낸 적이 있나 싶다. 

 사실 굳이 서른 넘고 나서라는 조건을 걸지 않고, 그냥 내 평생을 보더라도 나는 쭉 예민하고 쭉 날이 필요 이상으로 서 있는 사람이었다. 그리고 화가 많았다. 

 

 나는 인상이 세기도 하고, 화법이 아주 강하기도 하고, 목소리가 크기도 하고, 말이 빠르기도 하고, 말을 잘 하기도 한다.

 

 기 쎈 사람의 모든 조건을 다 갖추고 있는데, 어릴 땐 이게 미묘하게 자랑스러웠다. 아, 나는 누구도 쉽게 범접(?)할 수 없는 사람이구나. 아 나는 쎈 사람이구나. 나는 개 쎄다. 

 

 어릴 땐 에너지가 많아서 그랬던 건지, 아니면 깡이 좋아서 그랬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건 나도 나이를 먹었다. 먹어가고 있고, 나이 먹으면서 정말 소중한 사람들만 내 주변에 남기 시작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뒷통수를 때려 맞듯이 깨달았다. 나의 자랑이었던 기 쎔과 날 서있음 때문에 내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 피곤하구나. 나를 모르는 사람은 그냥 나를 헉 하면서 지나치면 되지만, 내 제일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 이것 때문에 힘들구나. 

 

 그 순간부터 은근히 자랑이었던 나의 기 쎔이, 견디기 힘들어졌다. 그리고 나의 날 서 있음을 내 체력과 멘탈도 견디기 어려워하는 게 확 와닿았다. 예를 들어, 하던 버릇이 있어서 꼭지가 도는 상황에서 지랄지랄을 확 붓고 나면, 현타가 아주 강하게 오는 거다. '아 이렇게 성질내는 걸 같이 들은 저 사람은 대체 무슨 죄인가. 내 화의 대상도 아닌데 나랑 친하다는 이유로 나의 감정 쓰레기통 역할을 한 저 사람은 뭐가 되고, 나는 이렇게 개지랄 하고 나서 시원하면 그만인가? 그리고 화 내는 것도 기 빨린다...' 

 

 그래서 감정 컨트롤을 잘 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부러워지기 시작했었다. 무슨 일이 생겨도 어떤 스트레스 선을 안 넘기고 "뭐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겠지."로 대응하고 최대한 털어버리는 사람들. 뭐.. 저런 류의 사람들도 여러 타입이 있긴 한데, 그 중에서 정말 천성이 저 과인 사람들은 확실히 나와 스트레스 받는 정도가 달라 보였다. 

 

 근데 천성이 정말 천성이라, 내가 나를 바꿀 순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. 이렇게 태어났고 살았다. 내 몫과 내 영역을 확실하게 지키기 위해 개성질로 완벽 방어를 하는 타입인 내가 아무리 노력한다 한 들 이 천성 어떻게 하겠냐고. 이거 바꾸겠다는 생각은 안 한다. 

 

 다만 이런 생각을 계속 염두했더니 요즘은 내가 맞을 거라는 확신과 내가 이길 거라는 확신에 대해 경계심이 좀 생겼다. "내가 틀렸을 수도 있지"라는 생각이 계속 들고, 그 말을 밖으로도 일부러 많이 내뱉고 있다. 

 

 내 가장 가까운 친구 중 하나가 요즘 이런 나를 두고, 너도 나이 먹나보다 - 라고 했다. 말하는 것도 생각하는 것도 많이 달라지는 것 같다고. 그 친구는 예전이 나은 지 지금이 나은 지 명확하게 말하진 않았지만, 그냥 알 것 같았다. 

 

 힘 빼고 살아도 뭐 굴러가긴 하더라. 좀 져도 뭔 큰 일은 안 일어나고.

 이렇게 생각해도 될만큼 내 주변 사람들이 날 잘 지켜주고 있을 수도 있는 일이다. 

 요즘은 정말 힘 쭉 빼고 있어도 보듬어주는 사람들이 많거든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