나의 판단이 더는 가볍지 않게 된 것을 환영한다.
사실 지금까지는 상당히 충동적으로 사람을 만나왔던 것 같다.
처음 만나고 사귀는 데까지 얼마 걸리지 않았지. 그 당일에 사귀는 경우도 있었고. 3번 만나는 이내에 보통 결론이 났다. (뭐 어떤 측면에서 봤을 때는, 그 세 번 안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면 그건 또 그것 나름대로의 "아닌" 사인인 거지만.) 근데 내 경우엔 아주 사소한 포인트로 쉽게 사람을 괜찮다고 판단해 버리고, 지나쳐선 안 되는 단점들을 초반의 들뜸으로 인해 잘 무시했었다. 초반에 발견된 치명적인 단점들도 내 환상의 합리화 스킬로 무마하고는 했다.
그래도 그 과정과 경험들이 나에게 많은 족적을 남겼다. 나와 맞지 않는 사람에게 나를 끼워 맞추며 좋은 여자가 되길 원하고, 또 상대를 나에게 끼워 맞추며 나 혼자 정신 승리하는 고통의 나날을 거쳐 결국엔 지금 단계에 이르렀네. 사실 지금 단계 또한 무수히 많은 중간 단계 중 하나일 것이지만, 이전 보다는 확실히 나은 곳에 온 것 같아 나름 만족스럽다. 나에게 맞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, 남들의 기준 말고 내가 "정말" 좋아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이젠 조금 알 것 같다는 자신감이 생기는 걸 보니까. 그래도 헛된 시간은 하나도 없었다 싶다.
죽을 때까지 연애를 알 수는 없겠지만, 그리고 결국 이 과정을 거치고 나서도 나는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겠지만 이제는 내가 급발진 하는 순간에 내 스스로를 다독일 수 있는 노련함이 조금은 더 생겼을 거다. 내 판단이 더는 가볍지 않게 된 것을, 나는 너무 환영한다.